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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현(동의대 철학과 교수)
죽음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것이다. 혼자가 되고자 늘 반야암에 온다. 죽음이 두려워 죽음과 친하고자 혼자되는 연습을 한다. 종교는 그리고 불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우리를 애써 설득한다. 나는 철학도로서 환생의 믿음을 실증하려고 노력해 왔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환생 혹은 윤회를 확신하느냐고. ‘객관화, 일반화, 합리화’라는 학문적인 진리의 엄밀성으로 말하기에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도 차에서 환생을 보며 죽음의 두려움을 걷어낸다.
발효차가 아닌 덖음차를 다관에 넣고 알맞게 식힌 물을 부어 2-3분 후 다관을 들여다보면 작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흑갈색으로 말라 비틀어져 있던 찻잎이 연두색으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이 곧 중생(重生)이요 부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봄에 따서 만든 차가 죽었는가 싶었는데 해를 넘기고도 처음 봄에 땄을 때의 그 모습 그 빛깔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이 아니면 종교로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며, 불교는 환생이 있기에 인과응보의 고리가 믿음을 갖게 한다.
주역은 생명의 끊임없는 창달(創達)과 창화(創化)를 나타낸다. 그 대표적인 괘에 지뢰복(地雷復) 이 있다. ‘복괘’는 위에는 곤(坤)괘, 아래에는 진(震)괘로 되어 있다. 즉 땅 밑에 우레가 있는 상이니 다섯 음 밑에 하나의 양이 있는 것이다. 복괘는 12개월을 나타내는 소식괘(消息卦)에서는 10월의 곤괘 다음에 위치하며 동지를 나타낸다. 동지는 하나의 양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때이다. 소식괘에서 초효에 양이 돌아오는 것은 건괘 4월에서 복괘 11월까지의 7개월 후이다. 이것을 “양이 그 길로 되돌아가서 7일 만에 여기에 다시 온다고 하고 복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차를 우린다는 것은 지뢰복(地雷復)괘 의 초효 일양(一陽)의 밝은 빛이 다관 속에서 부활하는 것과 같다. 산지박(山地剝)괘 의 상효의 일양(一陽)이 어둠 속의 중지곤(重地坤)괘 의 땅속에 묻혔다가 ‘지뢰복’으로 다시 나타나듯 녹차가 검은 어둠의 침잠을 거쳐 다시 연두색, 녹색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스러움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을 보면 왜 주역에서 자연의 큰 덕을 생명력[天地之大德曰生]이라고 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일 뿐 만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고 광대한 영역에 걸쳐 만물을 형성한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또 “낳고 또 낳음을 일러 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고 한 것이다.
당나라 문장가 이태백이 말하기를 “옥천사(玉泉寺) 진(眞)스님은 나이 80이 넘었는데도, 얼굴빛이 복숭아꽃 색깔 같다. 이것은 맑은 차향기가 다른 무엇보다 특이하므로 늙어 말라빠진 것을 떨쳐버리고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차는 사람을 장수케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차에는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는 생명력이 충만해 있다. 80노인을 어린 아이같이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만드는 차의 신기(神氣)를 보고 이태백이 감탄한 것이다. 주역에서 천지의 큰 덕을 생명력이라고 한 것을 차는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정한 차인(茶人)의 한 사람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차를 끓여 한잔하는 순간에 시상(詩想)을 떠올리곤 했다. 그는 초의(草衣)가 보내준 차를 마시며 습기(習氣)를 떨쳐버리고 붓을 들어 대필로 ‘茗禪’ 두 자를 써서 초의에게 보내기도 했다. 추사는 차승 천일(天一)스님에게 그의 차 생활을 기리며 다음과 같은 차시를 써서 보냈다.
남산의 선인(仙人)은 / 무엇을 먹는가? / 밤마다 산중에서 / 백석차(白石茶)를 끓여 먹으니 / 세인은 그를 일러 / 백석선(白石仙)이라 일컫네. / 한평생 나이는 먹었으나 / 돈은 쓸데 없었네. / 다선(茶仙)의 식후 뱃속은 / 편안하기 한량없어 / 72세 노봉(老峰)에 / 폐와 간이 생생하네. / 진정한 조사(祖師)가 / 이 곳 남산 남쪽에 있으니 / 나는 길이 멀다 탓하지 않고 / 그를 쫓으리.
추사는 차를 즐겨 마시는 천일스님을 신선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찬양하고 있다. 늙지 않고 오히려 어린 아이의 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도교의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불가의 스님들도 차를 통해 생명의 기운을 기르려 했던 것이다.
‘대관다론(大觀茶論)’에서는 차의 순은 작설이나 쌀 알갱이 같이 된 것을 가장 좋은 투품(鬪品)이라 한다. 이것은 이제 막 생겨난 어린 양기이다. 복괘에서의 일양(一陽)의 기운과 같다. 또 차를 따는 것은 밤이 어두워져 밝게 되는 새벽 아침으로서 이 시간은 동지의 절기와 같이 하루 중 양의 기운이 막 생성되는 시간, 곧 하나의 빛이 막 움직이는 때이다. 이 때 물의 맛도 담백하고 생기가 충만한 것이다. 이제 막 생겨난 양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동지에는 모든 관문을 닫아걸고 상인이나 여행자들의 통행을 금하여 제후도 나라 안을 순수(巡狩)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를 딸 때도 손톱으로 차순을 끊는다든가 손가락으로 비벼서는 안 되며, 냄새가 배이지 않도록 하고 땀기운이 배이지 않도록 해야 된다고 ‘대관다론’에서는 말한다. 이것은 차가 가진 신선하고 맑은 기운, 즉 여린 양기를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지난 달 중국 학회에 갔다가 사온 서호 용정차를 유리다관에 넣고서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을 보면서 환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