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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와 <주역>의 생명정신

                                            


 박문현*(동의대, 철학)




1. 연구목적과 방법


 다도에 있어서 제다법은 탕법만큼이나 중요하다. 제다법은 어떻게 하면 찻잎의 독성을 제거하여 인간에게 이로운 차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궁리에서 시작됐다. 차가 神氣를 가지려면 차의 본래성이 손상됨이 없이 간직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역의 기능은 음양의 감응으로 만물을 낳고 새롭게 하는 생명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자연의 원리는 󰡔주역󰡕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제다의 원리가 주역의 생명정신으로 설명이 가능한가를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는 덖음차의 제조방법을 중심으로 살청과 유념 및 건조의 방법을 󰡔주역󰡕의 괘사 및 괘변화로 풀이하고자 한다.




2. 제다의 과정과 󰡔주역󰡕


 1) 살청--- 화뢰서합(火雷噬嗑)괘


   불

  ☲

 →

 호괘

  ☵

  우레

  ☳

  ☶


화뢰서합괘


수산건괘


  

  차나무에서 갓딴 신선한 찻잎에는 산화효소가 들어있다. 찻잎을 가마솥에 넣고 고온으로 가열해 덖음으로써 효소를 파괴하는 과정이 살청이다. 살청을 주역의 괘에 비긴다면 화뢰서합(火雷噬嗑)괘에 해당한다. ‘서합’은 꽉 깨물어 씹는 것을 의미한다. ‘서합괘’는 아래는 우레(震)이고 위는 불 또는 번개로서 위엄 있는 조치와 번개처럼 밝은 판단을 상징한다. ‘서합괘’의 상은 아래의 진(震)괘가 아래턱처럼 움직여 가운데 있는 ‘九四’효를 깨물어 씹는 모양이다. ‘九四’는 씹는 대상으로서 음식물에 해당한다. 위의 턱과 아래의 턱이 합쳐지기 위해서는 이 대상이 부셔져야 한다. 이 대상은 사람들간의 화합과 결속을 침해하는 방해물을 가리킨다. 화뢰서합괘는 불의 기운(離卦)으로 찻잎을 빠르게 움직임(震卦)으로써 독소인 산화효소(九四)를 파괴하려는 살청과 같다. 따라서 살청은 법을 집행하듯 뜨거운 솥에서 단호하면서도 고르고 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향과 맛이 순하고 부드러운 차를 만들 수 있다.  

 

2) 유념---중뢰진(重雷震)괘


  우레

  ☳



 →

 호괘

  ☵

  우레

  ☳

  ☶


중뢰진괘


수산건괘



 찻잎이 알맞게 익게 되면 솥에서 퍼내어 덕석에 옮겨 반복적으로 비빈다. 이렇게 함으로써 찻잎의 표면과 내부의 수분 함량을 균등하게 유지하고 세포조직을 적당히 파괴해 차가 물에 잘 우러나게 하는 과정이 유념이다. 유념은 벼락천둥이 거듭치는 중뢰진(重雷震)괘에 해당한다. 중뢰진괘는 우레를 의미하는 진(震)괘가 두 개 겹쳐져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힐 것 같이 천둥소리가 겹쳐 일어나는 상태를 상징한다. 이럴 때 모든 사람들은 겁내고 두려워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제사를 거행하여 조금도 예절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임금이 된다고 한다.(帝出乎震)

  솥에서 덖어낸 찻잎을 덕석에서 서서히 뒤집고 궁글리면서 비비는 작용은 마치 우레가 치듯 찻잎에 충격을 가하는 일이다. 중뢰진괘는 천둥이 거듭치는 상이므로 찻잎을 비비는 작용을 거듭하여 세포조직이 적당히 파괴될 정도로 해야 한다. 침착하게 유념을 잘 했을 때 어려운 가운데서도 제사를 잘 지낸 사람이 임금이 되듯 좋은 차가 만들어진다. 


 


3) 건조 ---산택손(山澤損)괘


  산

  ☶

 →

 호괘

  ☷

 연못

  ☱

  ☳

우레


산택손괘


지뢰복괘



 

  마지막으로 덖고 비비고 털어서 찻잎이 서로 붙지 않게 하여 건조발에 얇게 널어서 말린다. 찻잎의 수분함량이 3-4% 정도만 되도록 거의 완전히 증발시켜야 녹차 고유의 향과 맛이 변하지 않고 보관이 용이하다. 

 주역의 산택손(山澤損)괘는 산이 위에 있고 연못이 아래에 있는 상이다. 손(損)괘는 덜어내어 줄이는 것을 상징한다. 하괘 연못의 흙을 퍼내어 상괘 산의 흙을 높이는 것이다. 공자는 들어내는 것(損)에 대해 분노를 뉘우치고 욕구를 제어한다(損, 君子以懲忿窒欲)고 말한다.

 산택손괘에서 “덜어냄에 성실함이 있다면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다.(損而有孚 元吉无咎)”고 한 것은 건조의 작업을 통해 수분을 줄임으로써 더욱 좋은 잎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4.결론


  덖음차는 먼저 살청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나쁜 것을 제거하는 엄격한 징벌을 상징하는 ‘화뢰서합’괘와 같다. 그리고 유념의 단계는 찻잎을 비벼서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게 하는 작업이므로 천둥으로 대상을 단련하여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중뢰진’괘로 풀이 할 수 있다. 또 제다의 마지막 공정인 건조는 수분을 덜어내는 작업이므로 연못이 가진 것을 덜어내도 그 자체는 보탬이 되는 ‘산택손’괘에 비길 수 있다. 

  살청에 해당하는 ‘서합괘’와 유념에 해당하는 ‘진(震)괘’의 내용을 알아보는 호괘(互卦)를 찾아보면 둘다 ‘수산건(水山蹇)’괘임을 알 수 있다. ‘수산건’괘는 아래와 위에 산과 물이 막혀있어 나아가기 어려움을 상징하는 고생의 괘이다. 그러나 “가는 길은 어렵지만 오는 길에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六五 往蹇來碩 吉)”고 말한다. 또 건조에 해당하는 ‘산택손’괘의 호괘는 ‘지뢰복(地雷復)’괘이다. ‘복(復)괘’는 “가던 길을 되돌려 칠일이면 돌아온다(反復其道 七日來復)”고 했으니 차의 성분이 간직되어 있다가 물을 만나면 소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은 천도와 인도를 하나로 본다. 제다의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도 간난(艱難)을 참고 견디면서 자기 수련을 통해 암울한 시기를 넘긴다면 찻잎이 연두빛으로 우러나듯 생명의 기운이 충만할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성백효 역, 󰡔주역전의󰡕 상하, 전통문화연구회, 1998.

          황태연, 󰡔실증주역󰡕, 창비, 2008.

          박동춘,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일지사, 2010.

          박문현, 「차문화와 주역의 和諧정신」, 󰡔월간茶道󰡕 2012. 1-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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