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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본 열자

류창희 2017. 2. 21. 13:40

장자가 본 공자


류창희


장자의 이름은 周, 자는 子休로 생 졸 및 그의 신세와 사적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노자의 언론에 뿌리를 두었고, 저서 10여만 자는 그 대부분이 우언이며 공자의 문도들을 부정하고 노자의 사상을 밝히지 위한 것이었다. 문장을 잘 쓰고 교묘한 辭句로 세상사를 잘 비유하였으며, 유가나 묵가에 대하여는 비난하고 공격하였다. 당시 경험이 많은 훌륭한 학자라 해도 장자와 논쟁하여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나, 장자의 의론은 과장이 지나치고 독선적이어서 왕공대인들은 그를 뛰어난 인물로 간주하지 않았다.

장자는 천재 철인임과 동시에 시인이었고, 이론가임과 동시에 예술가이기도 했다. 이 다면적인 그의 재필은 어느 곳이든 막을 데가 없었고, 사마천은 "그의 언행은 광휘에 빛나 나와 필적하도다." 라고 비판하고 있다. 어떤 때는 신 어떤 때는 철리 , 혹은 어떤 때는 서사 추리를 기상천외한 비유를 농했고, 혹은 선현을 야유했으며, 혹은 당대를 희롱, 혹은 천상에서 비약하는가하면, 어느 사이엔가 지상에서 더러운 것과 함께 즐기고 있다.

일월을 말하는가 하면, 곧 벌레나 물고기를 조종하고 있다. 그 심원한 직관, 그 예리한 논리, 그 자유분방한 상상은 서로가 올실이 되고 씨실이 되어 무엇에 비길데가 없는 비단을 짜내고 있다.

그는 대종사편에서 孔門 의 도제들을 야유하면서 안회와 공자에게 다음과 같은 대화를 시키고 있다. 안회; 저에게 조그만 진보가 있었습니다. 중니; 어떤 것인데?

안회; 저는 仁義(인의)를 잊게 되었습니다. 중니; 그것도 좋지. 하지만, 아직 미흡해. 안회; 저에게 조그만 진보가 있었습니다. 어디 말해보게나 저는 禮樂(예악)을 잊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모자라 저는 坐忘(좌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뚱이를 떨어 버리고 이목의 홀동을 물리치며 심신의 속박감에서 해방되어 도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좌망이 아니겠습니까! 좌망이란 ‘몸과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 대통과 같다는 것은 실재 일반, 즉 도와 같다는 것을 말한다.

장자는 여기서 고문의 가치인 인의 예악을 비웃고, 공자와 안회를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공자로 하여금 “그대 과연 현명하단 말인가? 久(구)야 청컨대 그대가 매 뒤를 따라야 할것이다.”라고 야유하고 있다.

공자; “그대 뜻을 하나로 갖도록 하라 . 이것을 듣는 귀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듣는 마음으로 하도록 하라. 듣는다는 것은 귀에는 머물게 되고, 마음에는 그것이 새겨지는 법이다. 불시심 블시물의 허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서 누군가가 어떤 것을 옳다고 긍정하면 곧 다른 것이 나타나서 똑같은 것을 아니다라고 부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儒墨의 시비가 있어서 그 비라고 하는 것을 시라 하고, 그 시라고 하는 것을 비라 반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 역시 한낱 무궁, 비 역시 한낱 무궁’으로서 그 끈이 없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에 병이 나고 반신불수가 되는데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나무 위에 있으면 사람은 두려워 덜덜 떠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이들 셋 중에 누가 올바른 거처를 알고 있겠느냐?

결국 시비 선악이라고 하는 가치관에는 이들 관습 취미 기호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질 어디에도 보편타당성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공문의 예악이라고 하는 사상도 궁극적으로 볼 때, 사회라든가 군신 상하의 질서라고 하는 당시의 사회제도 내지는 공자의 취미 기호라고 하는, 인습 또는 주관적 감정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단지 공자처럼 필요할 때는 곧 행하고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경우에는 혼자서 군자의 도를 즐기는 것이라면 아직 괜찮다고 하겠지만, 그의 아류의 무리들처럼 소리 높이 천하를 향해 인의 시비를 강매함에 이르러서는 점점 혹세무민하게 되는 것이다.

공문의 증자자신이 말한바와 같이 “임무는 무겁고 도는 멀다. 인을 가지고서 나의 임무로 삼는다. 또 어찌 그것이 무겁지 않을 것인가. 죽은 연후에 이를 모면할 수 있지만 아직 죽기는 아득하다.” 참으로 귀찮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유교적인 인습에 갇혀 기호망각 자연그대로 살아갈 수 없어 질서 시비 시시콜콜 시비를 가람 절차가 까다롭고 획일적인 군자가 되기를 주장 절제를 미덕으로 명분론을 앞세워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자신은 없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당위성 조삼모사도 조사모삼도 결국 똑 같은 것처럼 시비 미추도 동시존재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 동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취하고서 다른 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손가락을 가지고서 남의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에 귀착하게 된다. 

자공이 공자에게 말하기를 “감히 기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합니다.”공자; 기인이란 사람이 기이하여 하늘과 같다. 그러므로 하늘의 소인은 삼의 군자이고, 사람의 군자는 하늘의 소인을 말한다.“ 이것은 공문의 포착하기 어려운 장자특유의 성인을 기인리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만, 이 기인이라고 하는 기이한 표현을 택한 데에 스스로 그의 사람 됨됨이를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장자는 공문의 인의 시비를 분쇄하려했지만, 이 묘사 가운데는 확실히 장자의 기호가 번뜩이고 있다.

장자는 散人이라든가, 散木, 환언하자면 무용의 인간, 면용의 나무라든가를 흔히 이야기에 등장시키고 있다. 南伯子綦라는 사람이 商나라 의 어떤 언덕에서 큰 나무를 보게 되었다. 큰 마무로 자라는 데는 어딘가에 그 특이성 빙글빙글 비틀려 있어서 건축재로서는 쓸모가 없었던 것, “선을 이룩해서 그 명성에 다가갈 수가 없고, 악을 행해서 형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선약의 피안에 서서 만물이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가는 것, 이것이 장자에게 있어서는 養生의 비결이었다. 자신의 재주를 자랑삼아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려고 하는 것. 장자는 모든 불공평한 집착을 싫어했다.

장자는 선악 미추 유용 무용의 대립을 같은 것으로 보았는데 여기에 다시 생사가 같다는 것을 설파하여 뭇사람들의 아견을 좌절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도란 方生方死, 方死方生, 생겨나면 멸하게 되고 멸하게 되면 생겨나는 하나의지속인 것이다. ‘차분하게 잠자리에 들도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나는 것’처럼 생을 차분하게 맞이할 것이다. 그것은 그 죽음이란 것이 다시 새로운 생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장자의 기백의 특이한 점은 일체의 상대적 대립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높은 입장에서 일체를 종합하지 않고서는 참고 견딜 수 없는 그런 기질이 있다.

장자의 정신은 方圓을 하나로 구일하려고 하는 데에 있었고, 그 마지막 귀일점은 그의 이른바 ‘도’였던 것이다. 결국 “堯를 칭송하고 桀을 나무라기보다는 둘 다 잊고서 도에만 정진한다.”는 것이다. 사물로서 옳지 않은 것이 없고 사물로서 그렇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느 시기이든 어느 곳이든 그 변화를 즐긴다. 장자는 이것을 ‘物化를 즐긴다.’고 표현했다. ‘胡蝶夢’에서처럼 장자에게는 이른바 꿈도 현실도 도의 한낱 지속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어느 곳이든 주인공이 되어 그때그때의 변화를 즐기기만 하면 족했던 것이다.

장자는 오로지 한 개인이 진지를 체득하여 대자연의 이법에 순응하는 것을 지상으로 여겼는데, 제자백가의 시비 진위 가불가의 논쟁은 저마다의 사물을 보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인지를 떠나서는 자아를 망각하며, 사생을 망각하고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야만 진실된 명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장자의 이와 같은 주장은 결국 인간은 모름지기 자연과 마찬가지로 만물평등의 절대경지를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온갖 속박에서 벗어난 참된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