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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생각한다

류창희 2017. 2. 21. 13:12

孔子를 생각한다.


퇴계학부산 연구원 펀집위원 류창희


Ⅰ孔子의 生涯


1. 태어나서 죽음까지

孔子(B.C551~479)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전 魯나라 창평, 추라는 고을에서 父親 숙량흘과 母親 안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머리에 혹처럼 불룩 나온 곳이 있어 이름을 丘(언덕이라는 뜻)라 지었으며, 字는 仲尼이다 부친이 청빈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탓에 몹시 가난하였으며 공자가 3살 되던 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더욱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젊은 홀어머니에게서 바르고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성장하였으며 열여섯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배움에 몰두하였다. 정해진 스승이 없이 다만 끊임없는 독서와 함께 생활 속에서 겪는 모든 일에 대하여 스스로 연구하고 배움으로써 자신의 학문을 만들어 나갔다. 또 배울 것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서 묻고 공부하는 정성과 열의를 보였다.

30세 무렵부터 학문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차츰 그 명성이 알려져 전국각지에서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51세에 되던 해에 노나라 중도라는 지방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아 벼슬길에 올랐고, 한해 뒤에 대사구라는 직책을 맡아 확고한 신념과 올바른 판단으로 정치를 하였으나, 간교한 모함이 공자를 아무런 미련없이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 뒤부터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한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孔門十哲(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宰我, 子貢, 冉有, 季路, 子遊, 子夏)을 비롯하여 제자가 3천여명에 이르렀다. 또한 훗날 儒敎의 기본 경전으로서 유학을 공부하는 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준 論語, 詩經, 書經, 易經, 禮記, 樂記, 春秋의 六經을 갖추었다.

공자의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유교사상이 확립되어 갔지만, 그 자신은 외아들 孔鯉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가장 아끼고 기대를 걸었던 제자 顔回 子路가 잇달아 죽은 이듬해 73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2. 공자의 취향과 성격

생각보다 공자는 재미있고 충실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감성과 예술적인 취미가 넘치는 인간다운 생활을 했다. 공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반주가 달린 시가의 책을 편찬했다.


*興於詩하며

“興은 興起함이다 詩는 성정에 근본하여 사악한 것도 있고 바른 것도 있어서 그 말이 이미 알기 쉽고, 노래로 읊는 사이에 抑揚하고 반복하여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초기에 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하는 마음을 흥기시켜 스스로 그칠 수 없게 하는 것은 반드시 바로 시에서 얻어진다.”


*立於禮하며

“禮는 공경하고 사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節文과 度數의 상세함이 있어 사람의 肌膚의 모임과 筋骸의 묶임을 견고하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가 중간에 능히 우뚝이 자립하여 사물에 흔들리고 빼앗김을 당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이 예에서 얻어진다.”


*成於樂하며

“音樂은 五聲과 十二律이 있어 교대로 노래하고 번갈아 화답하여 歌舞와 八音의 절도로 삼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을 함양하여 간사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찌꺼기를 말끔히 사라지게 한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義가 정밀해지고 仁은 완숙해져서 화순해짐에 이르는 것은 반드시 악에서 얻어지니, 이는 학문의 완성이다. <論語 泰伯篇>

禮節은 (사물의 질서; 만물이 그 정당한 자리에 있는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질서) 음악(행복과 조화의 상태)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그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예술성은 그로 하여금 음식에 있어서

*食不厭精하시며 膾不厭細하시며 <論語 鄕黨篇>

“밥은 정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으며, 회는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食饐而餲와 魚餒而肉敗을 不食하시며 色惡不食하시며 臭惡不食하시며 失飪不食하시며 不時不食이러시다.

“밥이 상하여 쉰 것과 어물이 문드러지고 육류가 부패한 것을 먹지 않으셨으며, 색깔이 나쁜 것을 먹지 않으셨으며, 냄새가 나쁜 것은 먹지 않으셨으며, 요리가 잘못된 것을 먹지 않으셨으며, 때가 아닌 것을 먹지 않으셨다.”


*割不正이어든 不食하시며 不得其醬이어든 不食이러시다.

“벤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으셨으며, 그 장을 얻지 못하거든 먹지 않으셨다.”


복장에 있어서는 

*君子은 不以紺緅飾하시며

“군자는 감색과 붉은 색으로 옷깃을 선두르지 않으셨다.”

감은 짙은 청색에 적색을 띤 것이니, 재계할 때의 의복이다. 추는 묽은 색이니 3년상 연복을 선두르는 것이다.


*紅紫로 不以爲褻服이러시다 <論語 鄕黨篇>

“홍색과 자주색으로 설복(평상복)을 만들지 않으셨다. 홍색과 자주색은 중간색으로 바르지 않고, 또 부인과 여자의 옷에 가깝기 때문이다.


*必有寢衣하시니 長一身有半이러라.

“반드시 잠옷이 있었으니 길이가 한길하고도 반이 있었다.”


*褻裘長하되 短右袂러시다.

“평상시에 입는 갖옷은 길게 하되 오른쪽 소매를 짧게 하셨다.”

위와 같은 그의 까다로운 성미의 영향은 이혼에까지 쳤다. 공자는 그 아들 손자 삼대에 걸쳐 아내와 이혼을 하거나 별거를 했다. 또한 학문의 계통에서도 제자인 曾子, 그의 제자인 子思, 자사의 제다 孟子도 마찬가지로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도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 취미는 의심할 여지없이 귀족주의자였다.


성품은

*我非生而知之者라 好古敏以求之者也로다 <論語 述而篇>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이나 학문을 탐구하고 쉬지 않는 근면한 독서가였다.”


*由아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요 不知爲不知是知也니라  <論語 爲政篇>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사람이라”는 인간적인 솔직한 풍모를 보여주었다.


*士志於道하며 而恥惡衣惡食者는 未足與議也니라.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고 하였다.”


П.孔子思想의 性格

지구상 그 어떤 생명보다도 인간이 가장 귀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은 미루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류역사 속에서 인간이 지닌 이 같은 진정한 가치를 최초로 발견하고 일생동안 그 가치를 현실 속에서 실천해 나가고자 노력하였던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공자의 사상은 그 근본에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인간과 인간의 현실적인 삶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고있으며, 또한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공자의 사상은 인간본래의 순수하고 착한 성품을 발양하고, 인간이 지닌 도덕적인 역량을 발휘하며, 나아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이룩해 나가는 것으로 일관되어있다.

극히 최근까지 주로 동아시아의 中國, 韓國, 日本은 그가 편 유교에 의해 통치를 받아왔다. 극동에서는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나 동양사회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까지 거의 비평을 초월한 절대적 권위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도덕, 정치생활 풍속 등 모든 것이 儒敎精神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공자를 모르는 사람은 그대로 人倫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세대로 말하면 불과 2,3세대사이에 공자라는 이름은 전설적인 聖人의 한사람, 어딘가 고리타분하고 촌스러운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자를 몰라도 과학자, 기술자, 미술가, 음악가의 길로 나아가고 입시나 채용시험을 보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다. 일부 관심이 있는 학자들이나 古書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박제된 학문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1. 인본주의적 규준

진리는 인간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진리가 실제로 인간성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을 진리라 할 수 없다.

공자의 가르침은 모든 개인의 수양에 기초를 두면서 ‘인간의 척도는 인간이다.’ 인성의 가장 중요한 본능을 따르는 길로 인격완성을 하며, 보통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생활자체을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을 측정하는데 인간으로써 하는 이 인본주의 사상은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요구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당연한 그 귀결로 공자가 자주 말하고 있는 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해서는 안 된다.’ 는 훈계 즉 恕(헤아림)에다 둘 것을 요구한다.


2.사회적 질서의 구성

禮는 단순한 종교로서 祭器를 만지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를 올릴 적의 恭敬하는 경건한 마음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예는 상호간의 존경과 애정을 표시하는 원리이다. 宗廟의 예배에 적용될 적에는 경건하므로 조정에서는 관등의 질서로, 가정에는 부모와 자식의 친애로, 형제사이에는 융합으로, 마을에는 장자와 연소자사이의 질서에 대한 존경으로 나타난다.

즉 사회적 질서의 원리를 둑이 물난리를 막는 것처럼, 사회적 혼란이나 도덕적 혼란을 막고자하는 것이다.


Ш.맺으면서

孔子의 思想的 특징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단 한순간도 인간의 삶과 현실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인의 실천을 통한 인격의 완성을 주장한 것이다.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가르침을 베푼 것 등은 모두 인간에 대한 그의 확고한 믿음과 지칠 줄 모르는 인간애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 누구나 예의와 염치를 알아 스스로 잘못을 범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사랑을 나누는 사회가 곧 공자가 건설하려던 이상사회였다. 이와 같은 공자의 이상은 애석하게도 그의 생전에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공자의 가르침은 그를 따르던 수많은 훌륭한 제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으며, 그의 제자들에 의해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유교는, 이후 2천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왔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닭이 없어지면 밖에 나가 그것을 찾지만 자기의 본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것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공자의 사상을 기리고 또 배우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려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