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학 소식
이 취임식 단상
지난 6월16일 부산일보사 10층 대강당에서 이상희 이사님(현 담수회 회장님)의 사회로 퇴계학부산연구원 이 취임식 행사가 있었다. 큰 행사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애쓰신 본원 이규형 이사장님. 이사장님은 연구원 산하에 부설 상덕대학을 설립하여 저명교수 30여명을 상임연구위원으로 위촉하고, 고전강의와 예절교육, 시민교양강좌와 전통문화특강 및 퇴계학부산소식지, 퇴계학논총, 등 책자를 간행 보급하고 있다는 인사말씀이 행사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퇴계학회 편집위원으로 일한지가 꼭 10년인데 여느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여태까지의 행사가 잘 지켜지고 다듬어진 숲과 닮아있었다면, 그날의 모습은 항구도시 부산에 맞는 해안선이었다. 파도가 출렁이고 배들이 떠 있는 듯 했다. 수십개의 화환은 마치 항구를 가득채운 축제의 만국기마냥 각양각색이다. 새로 취임하는 원장님의 모습에서 역동적인 바다가 보였다.
그 역동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4년 전 류탁일 원장님이 꼿꼿하게 취임사를 하시던 모습이 겹친다. 곁에 앉아 도와드리지 못함이 안타깝다. 그날은 혼자 오르셨던 단상에 오늘은 조심조심 신임 원장님의 부축을 받으신다. 새로 오는 자와 떠나는 자 그 모습이 정녕 보기 좋다. 다만 조금 더 건강 하셨더라면 이렇게 마음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열정적인 선생님을 믿고 너무 많은 것을 얻어내어 기운이 다 소진되셨나. 송구한 마음에 차마 바로 뵐 수가 없는데 “떠나는 이는 말없이 돌아설 때 그 뒷모습이 아름답다 …” 목소리까지 흔들리신다.
처음 취임하셨을 때, 퇴계학연구소가 부산에 존재해야할 이유와, 부산지역사회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이념적으로 지향해야하는 목표를 생각했다는 말을 하실 때는 다시 목소리가 청아하다. 퇴계선생이 계시던 청량산의 솔바람 소리처럼 맑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똑 같다. 아무리 최첨단의 기계문명이 발달해도 우리가 사람으로서 지키고 보존하는 정신문화는 추로(鄒魯)지향을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학자의 성품은 올곧아야 한다. 말에는 군색함이 없어야하며 매무새에 한 올 흩뜨려짐이 없는 군자다움은 사람을 사람답게 지켜주는 자존심일 것이다. 지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자성(自省), 즉 자기관리를 하며 온화(溫和)와 애경(愛敬)으로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배려(配慮)의 정신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비의 정신이다. 나아가 21세기 부산시민의 정신이라 여긴다는 단호한 말씀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그동안 전통문화 시민강좌와 제도 밖의 한자교육으로 부산시민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부산지역 학자들과 더불어 ‘뿌리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써 아직까지 누구도 해내지 못한 부산의 얼을 찾는 일도 했다. 아울러 선적지 순례와 국제회의 등등 교육적 역할을 다 하셨다.
학처럼 고결한 자태로 그 하나하나의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순간마다 어려움과 보람의 감회가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약속된 시간. 아름답게 선양하는 모습이 더 애달프다.
더 넓게 더 높이 닻을 펴서 항해할 수 있도록 새로 취임하시는 김상훈원장님(전 부산일보 사장)에게 바통을 넘기셨다.
전임원장님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학자들과 후학들을 꼼꼼하게 양성하셨다면, 새로 취임하는 원장님은 그 이름만 들어도 선뜻 앞에 서신 듯 거목이시다. 어디 그 뿐인가. 축사에서 어느 언론인은 “40여년을 푸른 산맥을 달리는 질풍노도와도 같은 걸출한 언론인이요, 논객이요, 시사평론가요, 시조시인이며 정치평론가”라고 했다. 더 어떤 칭호 없이도 왕성한 현역이심에 틀림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의 지역사회발전을 위해서 항상 중심에 서서 많은 역할을 하셨던 분이다. 높은 경륜과 학식을 고루 다 갖추셨으니 절로 힘이 솟는다.
아마도 그 역량은 정치가에게 공직자에게 교육자에게 바르게 살아가고자하는 시민들에게 퇴계사상으로 더 큰 영양을 줄 것이다. 고매한 이론으로만 느껴지던 학문과 사상을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매개역할을 하실 것이리라 믿는다.
퇴계선생은 살아생전 위로는 임금으로 부터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가 “오른쪽에 앉을 어른이 없다.”고 지금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존경할만한 분이 없다고 이용태(현 박약회회장)회장님이 안타깝게 말씀하신다. 진정한 이 땅의 어른의 모습을 실천하여 보여주고 계시는 분이다.
대학총장님의 축사 중에 퇴계사상을 한마디로 뭐라 하느냐는 질문에 손팔주 부원장님은 ‘경(敬)’이라고 말하라 하셨다더니, 그분 지금 어디 계신가.
부산퇴계학 연구원의 회원들은 ‘경’으로 잘 조성된 수목원의 나무와도 같다. 나무들은 청정한 공기를 뿜어내어 나라의 풍속을 바로잡고 지구촌에 동방예의지국의 위상을 떨칠 것이다. 그날 진심어린 축사를 해주셨던 시장님 교육감님 대학총장님 방송사사장님 그리고 축하하러 오셨던 각계각층의 내빈 여러분들. 어느 분은 새것을 가득실어 들어올 것이고, 어느 분은 우리의 것을 잘 받들어 밖으로 내 보낼 것이다. 퇴계선생의 정신이 온 누리에 뿌리 내릴 것이다. 간절하게 모두 동참하실 것을 기대해본다.
우리회원 모두는 가정에서 혹은 직장이나 사회단체에서 숲을 잘 보존하고 가꿔야할 소임이 있다. 그 이름 ‘퇴계의 숲’이다.
그 숲은 정신문화의 중심이다.
퇴계선생!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관광차 떠난 도산서원에서나 만나는 선현인가, 천 원 짜리 지폐속의 인물인가. 행사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오셔서 경청하는 분들은 장년의 어르신들이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산퇴계학연구원이 아직까지 천 원의 가치를 크게 여기는 아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퇴계의 숲에서 새소리마냥 낭랑한 글 읽는 소리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더 울창하고 잘 자란 수목들이 가득한 숲. 묘목의 씨앗들이 움트는 그런 숲이 되어 항구도시 부산에서 큰 대들보가 될 기둥들을 가득실고 망망대해로 진출할 수 있는 오늘이었음 싶다.
류창희 편집위원
rch560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