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철학 (4 ) 물과 불이 만나 바라밀이 되고
박문현(동의대 철학과 교수)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요즘 부쩍 커피전문점이 많이 생겨났다. 어느 나라를 가봐도 이렇게 커피 전문점이 많은 곳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바닷가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커피 마시는 것도 즐긴다. 그런데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은 찾기 힘든다. 찻집이 있다 하더라도 우중충한 인테리어에다 고풍이 나는 온갖 잡동사니를 늘어놓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서울의 명동 한 복판의‘오설록’같이 현대적 감각으로 꾸민 티 하우스가 여러 곳에 생겼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포은 정몽주는 성리학자로 ‘주역’을 탐독하면서 차를 애용했다. 그가 쓴 시 가운데 ‘주역을 읽으며[讀易]’라는 시가 있는데 이것은 그가 차를 끓이면서 쓴 시이다.
돌솥에 차가 끓기 시작하니 / 풍로에는 불이 빨갛구나. / 감(坎)과 리(離)는 천지의 작용이니 / 이것의 의미는 무궁하도다. / 내 마음에 건곤(乾坤)의 이치를 품고서 학문을 한지 36년. / 눈앞에 있는 주역 이전의 자연을 인식하고서 / 복희씨를 생각하니 그의 자취가 이미 나열되어 있네.
포은은 차를 끓이면서 불에 의해 돌솥이 데워지면서 물이 끓는 걸 본다. 풍로의 불에 의해 물이 끓는 걸 보고 그는 주역 64괘의 하이라이트인 수화기제(水火旣濟)괘 를 보았다. 머릿속에만 맴돌던 ‘수화기제’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8괘의 물상에 대하여 풍우란(馮友蘭)은 “우주 안에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천지(天地)이고, 하늘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일․월․풍․뢰(日․月․風․雷)이며, 지상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산․택(山․澤)이고, 인생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수․화(水․火)이다. 옛사람이 이 여덟 가지로 우주의 근원을 삼았다. 그래서 이를 8괘로 배치하였다.”고 했다.
포은은 8괘의 수․화를 돌솥의 물과 풍로의 불에서 보고 ‘주역’ 설괘전(說卦傳)에서 ‘물과 불이 서로 해치지 않는다[水火不相射].’고 한 말을 머리에 떠올린 것이다. 물과 불은 오행에서는 ‘수극화(水克火)’로 상극으로 보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서로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돕는 관계로 본다.
‘주역’에서는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괘를 ‘수화기제’라 하여 완결과 완성을 상징한다. 물이 위에 있으므로 그 기운은 아래로 향하고 있고 불이 밑에 있으므로 그 기운은 위를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물과 불은 서로 만나게 되고 이 속의 모든 것은 익게 된다. 밥이 되기도 한다. ‘기제괘’의 형태는 모든 효가 하나하나 정당한 위치에 있다. 모든 효가 바른 위치에서 상,하괘가 서로 호응하는 상태를 가진 것은 ‘주역’ 64괘 가운데 이 ‘기제괘’ 밖에 없다. 나는 이 ‘기제괘’를 설명할 때 불교의 바라밀(paramita)에 비유한다.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 갔을 때, 곧 수행의 완결이 바라밀이 아닌가.
포은은 풍로의 붉은 불과 돌솥의 물이 끓는 것을 보고 ‘주역’의 원리를 모두 터득한 것이다. 그런데 ‘주역’을 만든 복희씨는 이 완성의 괘를 64괘의 마지막 64번째에 배치하지 않고 그 앞인 63번째에 배치했다. 완성은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64번째에 화수미제(火水未濟)괘 를 두었다. 물과 불은 또 다른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다.
포은은 “즐겨 듣는 것은 돌솥에 차물 끓는 소리[愛聽石鼎松風聲]”라고 읊었다. 이 물 끓는 소리는 차인들이 매우 흥미 있고 운치 있게 느끼는 것으로 이를 송풍(松風)이라고도 쓰고 회우(檜雨)라고도 한다.
적당한 화력을 받은 차 솥 안의 물 끓는 소리는 매우 고요하면서도 맑고 그 무엇인가 우리 정신 자체 내의 갖가지 음악적인 천뢰(天籟)의 주악을 듣는 경지라고 최범술은 표현한다. 천뢰는 자연이 내는 피리소리이다. ‘장자(莊子)’에는 “너는 인뢰(人籟)는 들으나 지뢰(地籟)는 듣지 못하였고, 너는 지뢰는 들으나 천뢰는 듣지 못하였으리라.”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천뢰는 장자가 우리에게 제시한 최고의 정신 경지 혹은 도(道)의 메타포이다.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사람은 하늘의 피리 소리를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어를 넘어서 있으며 언어를 통해 전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천뢰는 우주의 율동과 생명의 다양한 표현과 소리 그대로를 긍정하고 향유하는 심미적인 최고 정신 경계의 은유이다.
육우 역시 차 솥에 물을 붓고 끓이는 것에 대해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그는 ‘다경’에서 “물 끓는 모양이 마치 물고기의 눈알 같은 기포가 생기고 작은 소리가 나는 상태를 첫 번째 끓음이라 한다. 솥의 가장자리에 샘물이 솟구치듯 하고 구슬같이 물방울이 올라올 때를 두 번째 끓음이라 한다. 물기포가 성난 파도처럼 요동치고 북치는 듯한 소리가 나는 상태를 세 번째 끓음이라 한다”고 말한다. 단순하게 생각되는 찻물 끓이는 일을 육우 역시 자연의 조화로운 연단(鍊丹)으로 본다.
효당은 물 끓는 기운이 가장 알맞게 들어맞았을 경우를 경숙(經熟)이라 한다. 경숙은 ‘끓여진 물이 뜸이 잘 돌았다.’ 또는 ‘끓는데 있어서 물이 익게 끓여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맹물의 분을 넘은 순숙(純熟)을 거쳐 순숙된 탕물을 더욱 끓인 결숙(結熟) 이후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찻물을 끓이는 데 있어 결숙까지가 음양이 동탕하는 ‘수화기제괘’에 해당한다면 뜸이 잘 돌아 정(靜)의 상태에 들어간 경숙은 물과 불이 위치를 바꿔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는 ‘화수미제(火水未濟)괘’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미제괘’로 ‘주역’은 64괘를 일단 끝낸다.